
2022 © Maxim Tabachnik










수비즈 저택은 1371년에 필리프 2세(오귀스트)의 중세 성곽 밖에 지어진 올리비에 드 클리송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 시기의 흔적으로, 두 개의 탑이 양옆을 지키는 요새화된 문이 남아 있으며, 지금도 아르시브 거리(Rue des Archives)에서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소유주였던 강력한 기즈 가문은 건축가 가브리엘 술리냐크에게 저택의 확장을 의뢰했습니다. 그들은 프리마티초와 니콜로 델라바테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저명한 예술가들을 초청해 새로 지은 예배당을 장식하게 했습니다. 기즈 가문은 이곳에 가톨릭 동맹의 본부를 두었으며, 전승에 따르면 1572년의 성 바르톨로메오의 날 학살은 이 저택 안에서 계획되었다고 합니다.1700년, 수비즈 공 프랑수아 드 로앙은 이 저택을 구입하고 젊은 건축가 피에르-알렉시 들라메르에게 현대화 작업을 맡겼습니다. 들라메르는 정면 파사드를 남쪽으로 돌리고, 프랑-부르주아 거리(Rue des Francs-Bourgeois)를 향해 열린 주랑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명예의 안뜰(cour d’honneur)을 조성했습니다. 입구의 조각 장식은 로베르 르 로랭이 제작했으며, 두 명의 여성상이 군주의 명성과 경계를 상징합니다.
이후 들라메르가 후원자의 눈 밖에 나자, 제르맹 보프랑이 프로젝트를 이어받았습니다. 보프랑은 화려한 대아파트 내부를 설계했으며, 그 로코코 장식은 오늘날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실내 장식 가운데 하나로 손꼽힙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이 저택은 망명 귀족의 재산으로 몰수되었고, 1808년 나폴레옹 1세에 의해 국립 기록 보관소에 배정되었습니다. 1867년부터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들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전시하는 박물관이 이곳에 자리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기록 유산과 일반 대중을 이어 주는 국립 기록 보관소의 역사적 중심지로서, 대형 기획전, 연구일과 학술 회의, 교육 워크숍, 음악회 및 기타 행사를 개최하는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대규모 기록 보관고인 ‘그랑 데포’(Grands dépôts)로의 출입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를 통해 수비즈 저택을 거쳐 이뤄지며, 이 옛 귀족 저택은 프랑스의 문서화된 기억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합니다.










밀랍판에 적힌 왕실 회계 기록장 사라쟁
이 밀랍판(1256–57)은 루이 9세의 시종장 장 사라쟁이 소유했던 것입니다. 단풍나무에 수지 성분의 밀랍을 입혀 만들었으며, 기록을 양피지에 옮겨 적기 전에 철필로 임시 기록을 남기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표면을 매끄럽게 문질러 지우면 다시 쓸 수 있어, 이러한 판은 실용적인 초안용 장부로 쓰였습니다. 이 예에서는 한때 템플 기사단이 보관했던 왕실 재무 회계 기록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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